정부가 25일 내놓은 가계부채 관리 대책은 밋밋하다. 뾰족한 구석이 없다. 가계부채 급증의 원인인 집단대출을 틀어막을 확실한 방법을 알고는 있지만, 대책에 포함시키지는 못했다. 자칫 어렵게 불을 지핀 부동산 경기에 찬물을 끼얹게 될까봐 우려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처지는 나막신 장수 아들과 우산 장수 아들을 둔 어머니가 비가 오면 나막신 장수 아들이 장사가 안될까봐, 비가 안 오는 날은 우산 장수 아들이 장사가 안될까봐 매일 눈물을 흘렸다는 옛날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기록적인 가계부채 증가세를 완화하긴 해야겠는데, 부동산 경기가 냉각될까 걱정이다. 이번 대책에 분양권 전매 제한, 중도금 집단대출에 대한 총부채상환비율(DTI) 적용 등 시장 일각에서 거론됐던 강력한 주택 대출 억제 대책이 하나도 포함되지 않은 이유다.

대신 신규 아파트 공급 물량을 줄여서, 아파트 분양과 맞물려 있는 ‘집단대출’을 억제한다는 간접적인 방법들이 동원됐다. 구체적 대책으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택지 공급 베트남 부동산 물량을 줄이고 ‘미분양 관리 지역’을 확대하는 방안을 담고 있다. 이렇게 신규 아파트 공급 물량을 억제하면 그에 따른 ‘집단대출’도 자연스레 줄어들 것이란 계산이다.
◇저성장 늪, 부동산까지 죽일 순 없다
부동산 경기 진작과 가계대출 급증이 동전의 앞뒷면이 된 것은 정부의 정책에서 출발한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지난 2014년 7월 DTI 완화 등을 통해 가계대출을 확대하는 정책을 밀어붙였다. 대출 문턱을 낮춰서 부동산 경기를 살려 보려는 의도였다.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는 것이 최대의 목표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기대대로 얼어붙었던 건설 시장에 훈풍이 불었다. 하노이 아파트 신규 분양과 재건축이 늘어나면서 지난 2년간 부동산 거래가 늘어났다. 하지만 부작용도 동시에 커졌다. 가계대출이 급증세를 보였다. 빚더미에 빠진 가계는 소비를 줄였고, 내수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니 기업 매출도 뒷걸음질하는 악순환이 거듭됐다.
부채의 덫에 빠져 경제가 활력을 잃어가자, 이번에는 가계부채를 줄여야 하는 일이 다급해졌다. 하지만 요즘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이 녹록지 않다. 성장 엔진 역할을 하던 수출은 세계 무역 위축 탓에 20개월 가까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대기업 구조조정으로 앞날이 불투명해진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면서 올 1분기(1~3월) 투자 지표(국내 총투자율)는 6년 9개월 만의 최저를 기록했다.
그나마 부동산 시장이 우리나라 경제를 지탱해 왔다. 지난 상반기(1~6월 ) 건설 투자는 전년보다 10.1% 증가했다. 그 결과 상반기 성장률은 3.0%로 예상보다 선전했다. 겨우 되살린 부동산 경기를 꺼뜨릴 수 없는 처지다. 이찬우 기획재정부 차관보가 이날 브리핑에서 “분양권 전매 제한은 둔탁한 규제다. 공장 매물 주택 시장이 급격히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고, 도규상 금융위원회 금융정책국장은 “DTI 등을 강화할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연내 가계부채 1300조원 돌파 전망

문제는 가계부채 문제를 폭탄 돌리기식으로 계속 미룰 수 없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6월 말 우리나라 가계부채(가계대출+신용판매액)는 1257조3000억원으로 상반기(1~6월) 동안 54조2000억원 증가해 상반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이번 대책처럼 미지근한 방법으로 해결될 수준이 아니다. 지난 2·5월 정부가 은행권의 대출 심사를 강화하자 ‘풍선 효과’로 인해 농·수협,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으로 대출 수요가 옮겨간 영향이 컸다. 제2금융권의 상반기 사무실 별장 가계대출은 18조원이 늘었고 그 가운데 주택담보대출은 7조6000억원 증가해 역대 최대 증가폭을 나타냈다.
작년 7월 이후 정부가 분기마다 땜질식 가계부채 대책을 내놓는 동안 가계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연말이면 130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소득 증가 속도가 가계부채 증가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점도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0.8% 증가했지만, 6월 말 가계부채는 1년 전보다 11.1% 급증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빚으로 빚을 막는 폭탄 돌리기가 구조조정이나 경기 위축으로 초래될 대량 실업을 만나면 금융사 연쇄 부실로 폭발하게 될 것”이라며 “어느 정도 부동산 경기의 충격을 감수하더라도 더 강력한 가계대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다운기자] 지난 25일 발표된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방안’에 대해 시장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이 오히려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가계부채 대책으로는 최초로 ‘주택공급 관리’에 대한 방안이 포함됐다. 그동안 가계부채 뇌관으로 지적돼온 집단대출에 대한 규제도 마련됐다.
하지만 당초 시장에서 예상하던 것보다는 수위가 약해 부동산과 건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했다. 오히려 공급 축소로 주택 가격 상승도 나타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경자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파격적인 내용은 없는 기존 정책의 반복과 강화”라며 “공공택지 축소는 이미 2014년부터 충실히 진행되고 있고 중도금 대출 요건 강화도 작년 가을부터 지속된 방향성”이라고 진단했다.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공공택지 공급물량을 줄인다는 방침인데, 공급 감소는 시간을 두고 나타날 것이며 이 과정에서 중소형사나 지방 위주 건설사는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대형 건설사는 수도권과 재건축 등 우량 현장 위주로 사업을 영위해 상대적 민감도는 낮다고 봤다.
오히려 택지 공급이 줄면서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긍정적 분위기가 나타날 가능성도 제기됐다.
박형렬 메리츠종금증권 애널리스트는 “청약시장이 탄탄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환경에서 나타날 공공택지 공급감소는 민간택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건설업체 입장에서 용지구매 비용이 증가할 경우 분양가를 높이거나, 분양 규모를 줄이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전체 부동산 시장으로 볼 경우 공급감소나 신규 분양가 상승은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이 있는 것으로 판단됐다.
이광수 미래에셋증권 애널리스트도 “신규 분양 물량 감소는 2017 년부터 증가하는 신규 아파트 입주 리스크를 줄이는 역할을 할 전망”이라며 “저금리와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오피스 임대 주택공급 감소로 인해 기존 주택가격이 크게 오를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집단대출 규제에 따른 은행권의 영향도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김인 유진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집단대출 승인 물량이 2015년 큰 폭으로 확대됐고 향후 2~3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집행된다는 점에서 집단대출 중심의 증가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 가계부채 관리방안은 리스크 관리를 위한 선제적 조치라는 측면과 부동산시장의 과열우려에 따른 완급조절이라는 측면에서 은행주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덧붙였다.